유전 본격 해석(스포일러 포함!)

1.이 영화는 전반과 후반으로 나뉜다.

전반은 할머니와 찰리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겪은 가족들의 불안정한 심리상태, 그리고 인물간의 불안정한 관계를 조명하는데 힘을 쏟는 드라마다. 그리고 후반은 이렇게 전반에 쌓아올린 관계와 불안감을 활용해 전형적인 오컬트 호러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전반부터 당신을 흔들고 놀래킬 생각이 없다. 그저 영화 속 인물들이 비극에 잠식되는 불가피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서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을 당신에게도 물들게 한다.

.

.

2.먼저 엔딩씬을 바라보자. 이 엔딩씬은 오프닝씬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유전>의 오프닝은 간결하다. 할머니의 부고를 알리는 글 이후, 카메라는 애니의 집 밖에 있는 오두막을 비추며 서서히 줌아웃 한다. 오두막은 창문에 갇혀있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돌려 애니가 미니어처를 제작하는 작업실을 천천히 훑는다. 그 다음,애니의 집을 축소해 제작한 듯한 모형집의 방 하나를 줌인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프닝 씬과 엔딩 씬.

이 영화는 오프닝부터 선언한 셈이다.

이제 이 집 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언. 그러나 왜 하필 모형집을 줌-인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유전>은 애니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누군가가 만들어온 모형집에서 살아왔던 애니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형집은 대대로 누가 지어왔는가. 모형집 속 체스말처럼 다루어지는 가족들을 조종하는건 어떤 존재인가. 카메라는 빠르게 움직이지 않고 애니가 살고 있는 집을 모형집을 제작할 때 쓰는 현미경처럼 다룬다.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아주 천천히 그들의 삶을 클로즈업한다. 이들은 ‘유전력’에 의해 제작되어 왔고, 유전력에 의해 움직인다. 
엔딩 씬은 어떻게 끝나는가. 파이몬 왕(찰리)는 피터의 몸에 빙의하고, 그들을 숭배하는 사교집단들은 만세를 외친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러한 군중들을 어떻게 담아내는가. 마치 모형 오두막 안에 모여있는 인형들을 담아내는 느낌이다.

.

.

3. <유전>의 피할 수 없는 저주는, 영화의 제목 그대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조차도 선택권 없이, 필연적으로 태어난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우리가 선택했던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말하며, 선택권이 없는 필연적인 삶을 저주처럼 표현한다. 포스터 문구의 ‘그냥 받아들여’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엔딩. 이 가족의 저주는 “파이몬 왕 숭배집단의 의식”이라는 상징으로 은유되어 묘사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교집단들의 술수에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애니는 무력해 보인다.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가 결국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 것이 바로 선택권이 없었던 필연적인 결과처럼, 애니는 자신이 가족의 스트레스와 외부의 비극을 통제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 또한 대대로 가족에게 전해 내려온 ‘유전’이라는 비극을 견디지 못한다.

.

. 

이미 영화의 시작부터 보여진, 파이몬의 문양.

4. 갑자기 악마소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게 아니다. 영화를 천천히 돌이켜보자. 관에 누워있는 할머니가 착용한 목걸이, 피터가 찰리를 데리고 파티장으로 갈 때 잠깐 스쳐 지나간 전봇대에 새겨진 문양은 후반부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파이몬’ 이라는 악마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사토니’, ‘잔타니’는 파이몬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주문과 같다. 이렇게 ‘파이몬’으로 대변되는 비극은 애니의 가족 주변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피터가 수업을 들을 때 헤라클레스의 과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비극의 전조가 반복적으로 나옴에도 그걸 무시했기 때문에 비극을 맞이했을 거라는 어느 학생의 의견처럼, 가족을 지키는 헤라클레스(애니)는 이러한 전조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명백한 교만. 하지만 안타깝게도, 애니 또한 장례식장에서 연설을 할 때 파이몬의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들의 비극은 필연적이었다.

.

.

.

5. 영화 속 가족은 전형적인 모계가족이다. 그리고 저주로 상징되는 비극들은 모두 모계혈통에서 시작한다. 할머니 – 애니 – 찰리. 할머니와 애니는 가족 대대로 내려져온 영매의 능력이 있었지만, 애니는 그 능력을 무시하고 디오라마 아티스트의 길을 걸음으로서 그 힘을 억누른다.(그마저도 몽유병 상태에서는 통제를 못했지만.) 그러니 할머니는 다음 자식인 찰리가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젖을 먹이려 했던 것이다.

파이몬이라는 악마는 오컬트의 하위장르로 분류되는 악마학에서 72악마 중 상위권에 속하는 악마다. 소환자의 부름에 응할 때 화려하게 등장하며, 여자의 몸을 갖고 있지만 본디 남자이기 떄문에 남자의 몸을 갈망한다. 찰리는 바로 그 파이몬이다. 여자의 몸에 깃든 악마. 할머니의 죽음 이후, 파이몬을 숭배하는 사교집단은 본격적으로 파이몬을 남자의 몸에 빙의시키기 위해 계획을 짠다..
찰리는 어떻게 죽었는가. 찰리를 병원에 데려가려던 피터가 급하게 운전을 하다가 길가에 방치된 정체불명의 시체를 피하려다 사고가 난다. 그리고 찰리의 목이 떨어진다. 이 때, 피터의 앞을 가로막던 시체는 사슴처럼 보인다. 

 

파이몬. 자세히 보면 인간의 목을 수집한다.

영화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전쟁과 이피게네이아 살인을 언급하는데, 이는 찰리의 죽음과 연결된다. 트로이로 쳐들어가기 위해선 배를 띄우기 위해 바람이 필요하고, 바람을 부르려면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제물을 바쳐야 했다. 아가멤논 왕은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한다. 이를 안 아르테미스는 이피게네이아를 불쌍히 여겨 그녀 대신 암사슴을 제물로 바꿔치기한다.

 
비극적인 사고로 찰리는 죽었지만, 이는 찰리의 영혼을 피터의 몸에 빙의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처럼 여겨진다. 피터는 찰리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심신이 미약해진다. 이제, 주변 인물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가며 파이몬을 피터의 몸에 빙의시키면 된다. 조안이라는 인물은 애니에게 접근하여 가족을 지키지 못한 그녀의 죄책감 사이로 파고들어 악마소환술을 거행하게끔 한다. 그리고 그녀를 이용해 파이몬을 강림시킬 계획을 세운다. 애니는 이걸 모른 채로 사교집단의 계획대로 피터를 점점 쇠약하게 만든다.

.

.

. 

6. 영화 속 아버지는 모계가족 혈통을 이어받지 않은 외부인이기에, 이들이 처한 운명에 절대 개입할 수 없다. 애니와 피터, 찰리가 모두 불안정한 상태에서 환청과 환각을 봤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약을 챙겨 먹고, 자해한 피터를 집으로 데려올 때 조금씩 불안정한 상태를 보여주지만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가족을 덮친 저주를 거스르려 하자마자 불타버린다. 어떻게든 가족의 운명을 피하려고 했던 애니는, 자신의 남편이 불타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자 좌절하고, 그 순간 빛무리와 함께 저주(운명)를 받아들인다.

.

.

. 

7. 영화 속 찰리와 피터의 주변을 맴도는 빛무리는 파이몬, 혹은 혈통을 이어받는 자의 정통성처럼 느껴진다. 그 대상은 찰리였으나 찰리는 죽어 없어지고, 이제 가족의 남은 정통 후계자는 피터로 바뀐다. 그 이후로 빛무리는 피터의 주변에 등장하고, 엔딩씬에 이르러 피터의 몸에 깃든다. 빛무리는 파이몬이자 혈통의 저주, 비극이다.

.

.

.

8. <유전>은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그냥 받아들여’ 라는 포스터 속 문구처럼, 우리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모두 우리의 선택 하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비극적인 이야기 같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드는 건, 왜 하필 오컬트 호러냐는 것이다. 생각 끝에 내린 생각은, 아주 탁월하다는 결론이다.

오컬트는 분명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탐구하는 학문이자 종교이기에, 대중들에게 널리 퍼질 수 있는 성질을 가졌다. 하지만 오컬트의 도그마(교리)는 이것이다. ‘준비된 제자에게 스승이 나타난다’다. 오컬트는 소수의 선별된 인원들에게 전수한다. 이건 유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같은 혈통에게만 전달되어 내려온 것이 유전이고, 이러한 유전은 오컬트의 성질과 부합된다. 이 영화 또한 필연적으로 오컬트 호러로 제작되었어야 하는 것이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거스르려는 가족들의 비극을 직접 목격시킴으로서, 최근에 주로 소비되는 오락성 짙은 공포영화와는 결이 다른 공포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이러한 공포는 영화관을 나온 후,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불쾌감과 불안정함을 안겨준다. 그것이 공포라는 감정이다. 이 감독은 공포를 정말 잘 알고 있다. 이게 첫 장편연출이라니. 놀랍고 놀라울 따름이다.

.

.

.

0. 엔딩크레딧도 흥미롭다. 크레딧의 이름 한 글자씩 빨갛게 변하더니 내려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전해 내려간다. 이 또한 유전의 성질을 잘 묘사한 위트 있는 엔딩크레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