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될 리가 없지! <매기스 플랜> 리뷰

지금 당신에게 어떤 배우를 마음에 품고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레타 거윅이라고 말한다. 단지 그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연기력의 출중함을 선호하는게 아니다. 그는 21세기의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 거창한 꿈을 가진 청춘이 현실의 좌절감을 맛보는 <프란시스 하>에서부터 그럼에도 두루뭉실한 꿈을 놓지 못하고 뉴욕을 벗어나지 못하는 세대를 그린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기는 한결같았다. 그는 2,30대의 보이지 않는 꿈을 잘 알고 있다. 세대를 응시할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꿈은 있는데 그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할 수 있을지 두려워요, 그게 꿈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현실에서도 똑부러지는 답이 없듯 영화 속 그레타 거윅은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 마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는다. 현 세대의 두려움을 직접 체현하면서, 그것이 비단 당신 혼자만의 공포가 아니라는 것만을 당신에게 말할 뿐이다. <매기스 플랜>은 이런 그레타 거윅의 필모그래피의 연장선상에 놓인 영화다. 조금 더 허무맹랑하면서도 지금 세대의 고민과 상상을 담은 이 영화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만 갖고 싶은 주인공 매기의 거창한 계획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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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 등장하는 매기의 행동은 그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매기는 잠시 멈춰 시각장애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간다. 곧이어 예전의 연인이자 절친인 토니를 만난다. 이제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을 만한 아이를 유모차에 끌고 다니는 토니를 보면서 매기는 말한다. 6개월동안 남자 만난 적 없고, 6개월 넘게 나를 사랑해 줄 남자는 없는 것 같으니, 정자 기증을 받아 아이를 낳고 싶다고. 자신의 동창인 가이 차일더스가 정자를 기증해 준다고 하니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갖겠다고 말이다.   


4분 남짓한 오프닝 시퀀스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미리 선언함과 동시에 매기가 낙천적이며 전통적 가치관에서 얽매이지 않는 진취적 사고를 가진 인물임을 알린다. 결혼할 생각도 없고 반드시 배우자가 함께 해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예술은 전통적 가족주의를 해체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다방면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정자를 기증하는 가이 차일더스는 피클장사를 한다. 정자를 전달하려고 매기의 집에 방문한 가이는 능청스럽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정자를 받는건 어떠냐고 넌지시 제안한다. 영화 속 남자들은 하나같이 여자들을 자빠트리고자 한다. 매기는 정중히 거절하며 묻는다. 넌 수학을 좋아했는데 어쩌다 피클장사를 하고 있느냐고. 가이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수학이 아름다워서 좋아한 것 뿐이야.” 

영화에서 벌어질 난장판의 원인을 밝히는 영화 초반부의 대사.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

수학의 옷깃만 스쳐도 누구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는 가이의 말은 쓸쓸하다. 수학자란 평생 진리의 조각만을 찾아다니는 삶을 보낸다. 전체의 일부분만을 볼 수 있는 삶을 택하기 싫었다는 가이의 말은 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 씬 자체가 영화의 메세지를 함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매기의 계획은 착실히 진행되는 듯 싶다. 그러다 우연히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존을 만난다. 인류학자인 그는 유능하지만 자신보다 유능한 교수이자 아내인 조젯의 삶을 돌보는 정원사다. 평생 장미가 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다독여주는 매기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어찌됐든 매기는 아이를 낳았고, 존과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매기스 플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엘리트다. 절친인 토니는 변호사다. 갈등의 중심에 있는 인물 존은 저명한 인류학자이며 조젯은 콜롬비아대학 교수다. 심지어 주인공인 매기조차도 MBA 학위에 예술경영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 영화는 지식인층 사이의 갈등을 그리면서 그것이 그다지 거창하지 않음을 밝힌다. 그리고 그들의 자의식 넘치고 박식한 대사로 가득한 말다툼을 우스꽝스럽게 빚은 영리한 코미디다. 욕망의 아이러니에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을 지켜보면 자연스럽게 우디 앨런의 작품이 연상되는데, 찌질한 지식인 남성이 이상적인 여성을 대상화하는 그의 고질적인 작법과는 사뭇 다르다. 주인공 남성의 관점에 구속된 우디 앨런의 작품과는 다르게 <매기스 플랜>은 주인공 여성의 관점에 묶여있지 않은 채로 다른 인물의 캐릭터를 정성스럽게 빚어낸다. 난잡하고 자의식 넘치는 인물들이 죄다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시나리오를 쓴 창작자가 허투루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설마 나만 그런 것인가.)

정원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존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매기를 자신의 정원사로 두고 장미의 자리를 차지한다. 가정이라는 정원을 가꾸는건 자연스럽게 매기가 된다. 매기는 이런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 존은 몇 년 동안 소설만 쓰는데 이야기는 점점 복잡해져 재미가 없는데, 여전히 전 부인인 조젯과 통화하면서 관계를 청산하지 않았다.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직감한 매기는 삶이 구렁텅이로 빠지기 전에 재빠르게 다른 계획을 세운다. 존이 전 부인인 조젯과 재결합하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자신의 곁을 떠나게 하려는 계획. 매기는 조젯을 찾아가 자신의 결혼생활을 토로하며 혹시 재결합할 생각이 있는지 넌지시 떠본다. 이 얼마나 무모한 계획인가. 조젯은 제안을 거절하고 문전박대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다시 매기를 만난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그 계획에 정교한 살을 덧붙인다. 영화의 시작부터 중간까지 이야기는 매기의 계획대로 흘러가는게 단 하나도 없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동지(?)임을 증명하는 장면.

삶의 우연성을 포용하는 긍정의 에너지

인류학자이면서도 정작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보지 못하는 존, 대학 교수이지만 가정을 등한시했던 조젯, 그리고 계획에도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후회하는 매기. 이들의 관계는 원상복귀 되는 듯 싶다가도 전복되고, 위태로워 보이다가도 회복된다. 단 한 번도 계획대로 흘러간 적은 없는 매기의 계획은 그렇게 어찌 됐든 성공적이다. 이런 대책 없는 낙관이라니.


영화 초반에 가이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인생이라는 전체의 일부만 어렴풋이 볼 뿐이다. 수학자의 삶은 평범한 개인의 삶과 같다. 인생의 진리를 탐구하려고 노력하지만 명확한 답은 찾을 수 없다. 매기의 인생의 계획은 처음부터 원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셈이다. 다르게 본다면 가이는 인생의 괴로움을 맞닥뜨리길 거부한 인물일 수도 있다. 


낙관주의가 빚은 인생의 희비극은 그레타 거윅이라는 배우 덕분에 설득력을 가진다. 영화 속 매기는 뜻하지 않은 인생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좌절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움직인다. 누군가를 돌보고 대신 해결해 주려는 천성은 매번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그리 문제인가, 라고 말하는듯 하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삶은 단 하나도 없다.  삶의 우연성에 당황하지 말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씩씩한 낙관주의. 그래서 엔딩 씬의 소소한 반전은 비극적인 인생을 긍정하는 매기에겐 작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어차피 계획대로 흐르지 못할 삶을 열심히 계획하는 이들을 향한 공감의 영화.

“엄마가 정말 사랑해.”
“얼만큼? 잠깐, 알아. 25362만큼.”
“어떻게 딱 맞혔네. 정확히 그만큼이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 영화를 본게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