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잘못이 아니에요, [디태치먼트] 리뷰

이제 20세기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21세기엔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렸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명감을 가진 어른들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공동체가 이끄는 사회는 점차 개인화되어가면서 교사에게 요구하는 기대치는 커져만 간다. 학생을 이끄는 스승의 역할에, 교육서비스 제공자의 고개를 숙이는 친절함까지 강요하니, 교사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디태치먼트]의 교사들은 사명감에 불타 학생들에게 헌신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봤자 반항과 모욕으로 상처입은 자신을 돌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자신의 가족까지도 말이다. 교사들은 애착(Attachment)의 대상인 학생들에게 점점 멀어지며 무심해진다(Detachment). 그리고 여기, 임시직 교사로 여러 학교를 전전하던 교사 헨리는 학교에 뿌리내린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한 채로 이야기 속 학교에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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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가 임시 교사의 직책을 맡은건 하나의 생존전략이다. 그는 전통적인 교사의 역할을 오늘날의 교실에서 발휘할 수 없다는걸 알고 있다. 학생에게 애착해야 그들에게 공감하고 조언할 수 있다지만, 그에 따르는 모욕과 폭력은 온전히 교사들이 짊어져야 한다. 학생들은 예전처럼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학교는 교사의 실적들을 중시하고, 학생들의 진로 선택이나 대학 진학율로 가치를 평가한다. 진학율이 높아야 학교 주변의 부동산이 오른다니, 교육에도 자본주의의 손길이 뻗쳤다. 어른들은 교사의 책무를 알고는 있지만 차마 학생들에게 다가가질 못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어른들의 태도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챈다.
헨리는 학생에게 무심해진 교사들과는 달라보인다. 그는 처음 수업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선전포고한다. 수업을 듣기 싫으면 나가도 좋다고. 교실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돈한 그는 가방을 던지며 시비를 거는 학생에게 ‘가방은 마음이 없다’며 소동을 매듭짓는다. 헨리는 학생들과 본인 사이에 거리감이 있다는걸 숨기지 않으면서, 거리감을 유지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교사가 되어주겠다는걸 선언한다. 학생에게 가까이 다가가진 않겠지만, 그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겠다는 솔직함과 당당함. 학생들은 헨리에게 집중한다. 흥미롭게도 헨리의 얼굴엔 언제나 우울감이 자리한다.

학생들과 거리 두기

오프닝 시퀀스는 임시직 교사 헨리의 인터뷰다. 그리고 여러 교사들의 인터뷰를 교차편집하면서 모든 어른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아이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아님을 명시한다. 여러 교사들의 인터뷰를 흑백으로 촬영한건 색감을 의도적으로 제거해서 그들에게 사명감과 활기가 모두 빠져버렸음을 은유하고, 곧이어 헨리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촬영함으로서 앞서 색이 바랜 교사들과의 차이점을 내보인다. 마치 그가 교사들에게 발생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에리카와 메레디스, 그리고 할아버지

헨리가 만나는 두 소녀 에리카와 메레디스는 학교 안과 밖의 청소년들을 대표한다. 이들은 교사 헨리가 아이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입증하는 대상인 동시에, 학교 밖 어른으로서의 헨리가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리트머스 종이 같다.

Attachment, 애착, 믿음, 지지.에리카는 자신을 착취하는 어른들로부터 영악한 태도를 취하며 생존하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헨리는 길거리에서 매춘을 일삼는 에리카와 조우하고 그를 집으로 데려와 머물게 한다. 교사인 헨리는 집에 돌아오면 더이상 교사가 아닌, 평범한 어른이 된다. 성적 착취의 목적 없이 자신을 돌보는 멀쩡한 어른을 만난 에리카는 당연하게도 헨리에게 의지한다. 모든지 스스로 판단하라는 헨리의 말에 에리카는 조금씩 변한다.

메레디스는 에리카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그는 예술적 재능이 있지만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고, 아버지는 그의 예술의 가치를 폄하하며 자존감을 깎아내린다. 그런 그에게 헨리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멋진 어른이자 스승이다. 가족에 기댈 수 없는 메레디스는 헨리라는 교사에게 의존한다. 하지만 교사 헨리는 메레디스를 믿고 지지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줄 순 없다. 그는 학생과의 거리감을 깨트리는걸 허용치 않는다. 이는 자신의 유년시절에 겪은 비극의 죄책감에 기인한다.

Detachment. 거리를 둠, 무심함, 분리, 격리.헨리는 학생들과 거리를 둔다. 이런 행위는 과거의 고통과 죄책감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행동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비극을 떠오르게 하는 할아버지를 매일 문병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오래도록 과거를 마주해야만 한다.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는 기억을 잃은 채로 자신의 딸을 찾기만 하고, 헨리는 그런 할아버지를 자상하게 대한다. 한편으로는 할아버지에게 노트를 건네며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복기할 것을 권한다. 영화에 밝혀지진 않지만, 할아버지는 헨리의 어머니의 죽음에 연관되었을 것이다.(헨리의 어머니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망각한 자에게 속죄할 것을 강요하지만, 망각은 언제나 죄책감에서 자유롭다.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우울감으로 자아를 갉아먹는 헨리는 길거리에서 자기파괴적인 매춘을 하는 에리카에게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린 철저히 실패했어요

헨리가 타인과의 관계, 특히 학생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행위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지만 교사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껴 그들을 방관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교사라는 직업을 관두지 않기 위한 현실적인 고민의 결과가 이것이다. 그는 한 곳에 정착하여 학생들을 애착한다면 자신이 견딜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헨리는 아이들과 거리를 둠으로서 교사 생활을 연명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의 곁에 오래 남겠다는 결기. 사명과 보람에서 스스로를 격리시킨, 평생의 공허함과 무력감. 그렇기에 헨리가 에리카와 메레디스를 밀어내고 청소년보호센터와 부모에게 책임을 넘기는 장면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철저히 실패했다. 영화는 성숙한 어른들의 고민이 오늘날의 학교에선 무용하다는걸 보여준다. 억누른 분노를 제어 못해 학생에게 뿜어내고, 짓궂은 농담으로 순간을 모면하고,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도 소외당하는 교사들의 얼굴을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빠른 교차편집으로 묘사한다. 이제 교사는 예전처럼 아이들에게 접근할 수도 없고, 무작정 멀어진다면 교사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 무엇이 해결책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에리카는 구원을 받지만, 학교 안에 있던 메레디스는 자살을 택한다. 사회안전망의 헛점, 교사를 사명감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교육 시스템의 합작이 비극을 불러왔다. [디태치먼트]는 이 대비되는 두 캐릭터를 통해 교육시스템의 폐해를 되짚는다. 그리고 그 책임을 오직 교사들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에리카는 교사 헨리가 아닌, 부모로서의 헨리에게 구원을 받았지만 메레디스는 아버지에게 인정 받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다.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라는 시스템이 전부 해결해주지 않는다. 부모들은 어느새 자녀들과의 거리감을 두고 그들을 학교에 격리시킨다. 영화 속 학부모 모임에 고작 한 사람만 참석했다는 소식을 들은 교사들은 과거를 그리워하며 말한다.

“그때는 늦게라도 참석하려는 부모님들로 복도가 북적거렸어요.활기찼었는데, 이젠 아무도 없네요.”

[디태치먼트]는 영웅적인 사명감을 지닌 한 교사가 아이들을 감화시키는 류의 드라마가 아니다. 교육시스템의 현실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냉정한 톤으로 작성된 평가분석지다. 해결책은 애착일까, 아니면 분리일까. 영화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저 황량한 교실에 홀로 남아 애드거 앨런 포의 문장을 읽는 헨리를 비출 뿐이다. 

지루하고 어둡고 조용한 그 해 가을, 
구름이 천국에서 우울하고 낮게 흐를 때 
말을 타고 기묘하게 두려운 시골길을 지났다. 

우울한 어셔가의 저택을 보며 
저녁이슬의 그림자 같은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저택을 보자 우울함이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곳의 피 흘리는 벽과 단순한 풍경을 보았다. 
나의 우울한 영혼과 썩어버린 나무를 보았다. 
그것은 구역질나는 마음의 냉정함이었다.

현실의 문제를 인식한 자의 무심함, 그에 따른 고뇌를 대신하는 문장은 폐허가 된 교실에서 울려퍼진다. 학교는 텅 비어만 간다. 헨리의 수업내용처럼 책을 읽고 의식과 신념을 발전시켜 마음을 지키는 것이 해결책이 된다면 좋으련만. 

p.s. 애드거 앨런 포의 문장을 인용한 엔딩은 영화의 가장 큰 흠이라 할 만 하다. 현실의 문제를 인식한 자의 무심함, 그에 따른 고뇌를 표현하고자 하는 인용일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애드거 앨런 포우의 문장은 엄습하는 우울함에 대한 찬미에 가깝다. 영화의 주제의식과는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

“선생님은 저한테 가족같은 사람이에요.”
“난 네 가족이 될 수 없어. 너한테 필요한 걸 줄 수 없어.”
“당신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나는 나를 몰라서, 나에게서 당신을 밀어낸다.
당신을 곁에 둘 자신이 없어서. 난 텅 비어있으니까.
헨리와 에리카의 가장 아름답고 처연한 대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