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 혼자 영화를 구할 순 없다 – [나를 찾아줘] 리뷰

1.오랜만에 영화로 복귀한 이영애

<친절한 금자씨> 이후 14년만이다. 이영애가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의 셀링 포인트다. 심지어 한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스릴러 장르물이다. 시놉시스와 예고편에서 공개됐듯이, 이영애는 실종된 아이를 찾는 엄마를 연기한다. 그러다 자신의 아이를 닮은 아이를 보았다는 제보를 듣고 지체하지 않고 낯선 곳으로 이동한다.

대충 눈치가 빠른 관객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를 찾아줘>의 주요무대인 촌락은 현실에 존재했던 ‘신안염전노예’ 사건을 연상시킨다. 감독은 시나리오 집필을 2008년부터 했기 때문에 염전노예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지만,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건이 떠오를 것이다.

이영애 + 스릴러 + 현실적인 이야기. 이렇게 보니 흥행요소들을 적절히 챙긴 영화같다. 이영애는 ‘금자씨’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연기도전을 했고, 염전노예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는 현실비판적인 지점도 있다. 하지만…

2. 뻔하고 익숙한 맛이 난다!

이 영화를 장르소설로 비유하자면 전형적인 스릴러의 문체로 쓰여진, 양산형 소설 같다. <나를 찾아줘>는 사건의 독특함이라든지, 혹은 색다른 전개나 새로운 캐릭터가 존재한다든지 하는, 이 영화만의 독창성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영애가 연기한 인물 ‘정연’은 제보를 받은 촌락에 방문해 조사를 하다가 아이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어른들을 목격한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붙잡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플롯은 단조롭고, 촌락을 형성하는 악역들은 특별한 캐릭터를 부여받지도 않았다. 촌락과 결탁한 경찰은 이미 현실에서 여러 뉴스를 통해 들어본 바 있다.

영화는 현실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영화는 여기서 고민을 해야 한다. 영화 속 악역을 현실의 빌런보다 악한 캐릭터로 보일 수 있게 만드는가에 대한 고민 말이다. <나를 찾아줘>는 이걸 해내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악의 소굴로 들어간 정연이라는 인물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허술한 악역을 깊게 들여다 보는걸 극도로 거부하는 느낌이다.

 

 

 

3. 이영애 홀로 고군분투하지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영화는 다방면으로 세월호를 은유하는 이야기를 기록해 왔다. <나를 찾아줘> 또한 세월호의 자장에 벗어나지 않는 영화다. 어른은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존재일 텐데, 영화 속 촌락의 어른들은 그들을 착취하고 겁탈하며 이용만 하기 그지없다. 주인공 정연은 자신의 아들을 찾으려다 우연히 촌락의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영화는 영화의 후반부에 관객들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만약 정연의 아들이 실종되지 않았다면, 그는 이 촌락에 붙잡힌 아이들을 구하려고 했을까? 아니, 그들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을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들을 방관하고 있었을까?’

<나를 찾아줘>에서 이영애는 이러한 감독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이자, 어른들을 관찰하는 감시자이며, 그들을 벌하는 집행자이기도 하다. 다소 전형적인 모성애를 연기하는 듯 하다가도 현실의 비극에 치여 생기를 잃어가는 개인의 복잡한 심리를 표현하는 이영애의 얼굴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하지만 그 외 다른 것들은…어…

영화의 메세지가 옳다는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영화적 즐거움, 그러니까 스릴러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긴박함이나 강렬한 서사적인 측면이다. 관객들은 영화의 주제의식을 듣기 전에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그런 면에서 <나를 찾아줘>는 철저히 실패했다. 파헤칠수록 새로운 비밀이 줄줄이 나오는 깊이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 비밀 또한 빠르게 공개되는 편이다.

다소 경직된 악역들은 전형성에 매몰되어 특별한 매력을 뽐내기조차 어렵다. 악의 일상성을 묘사하기 위해 천연덕스럽게 나쁜 행위를 일삼는 점은 인상적이다 할 만 하다.

영화는 마치 장르적 쾌감을 극도로 거부하는 느낌이다. 억지로 관객에게 영화 속 아이들과 정연이 느꼈을 답답하고 기분 나쁜 감정에 몰입시키려는듯 말이다. 관객이 과연 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편법을 이용한다. 공포영화에서 봤을 법한 점프스케어, 그리고 한국스릴러에서 애용하는 잔인한 폭력묘사를 남발하며 관객에게 장르적 쾌감을 제공하려는 듯 싶다.

하지만,

허구헌날 유명하고 연기력 좋은 배우를 쓰면 뭐하겠나.

시나리오와 연출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영화는 결국 무너진다.

4. 설명충빙의

영화의 주제의식을 내보이는 타입은 크게 두가지다. 전면으로 목소리를 내놓는 돌직구타입, 그리고 비유와 상징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변화구 타입.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한다. 스릴러 장르의 외피를 쓰고 실종된 아이들을 향한 목소리를 내려는 영화인 것이다. 좋은 장르영화들은 이걸 능히 해낸다. <아가씨>, <설국열차>, <기생충>, <쇼생크 탈출>, 심지어 <어벤져스:엔드게임>과 <엑시트>도 자신의 장르적 재미를 살리면서 할 말은 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를 찾아줘>는 영화의 후반부에 기어이 자신의 주제의식을 캐릭터의 대사로 설파한다. 그것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순간에, 대놓고 관객들을 향한 대사를 읊어대는 캐릭터를 보는 순간, 관객들은 몰입감은 깨진다. 인물들이 진부한 대사를 읊으며 자신의 악마성을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그 인물의 표정과 행동 하나를 카메라로 담는게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한 명의 배우가 영화를 온전히 구원할 순 없다. 이영애는 클리셰의 뻘밭에 묻힌 영화의 메세지를 파헤치고 어떻게든 구해내려고 하지만, 너무나 벅차 보인다. 이 영화의 성취는 이영애라는 배우의 에너지, 그리고 여전히 실종된 아이들을 향한 세상의 방관적인 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정도이다. 그 의도가 옳은 것이라 하여 영화까지 무조건 옳을 수는 없다.

그래도 이영애 배우님 복귀한건 좋았다. 다작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