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스트립클럽 그 자체라니깐 – [허슬러] 리뷰

1.스트리퍼들의 통쾌한 케이퍼무비? No!

스트리퍼들이 부자들을 상대로 돈을 털어먹는 영화. <도둑들>, 오션스 시리즈처럼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탈취하는 류의 쾌감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이 영화를 봐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범죄영화가 갖는 장르적인 즐거움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긴 하지만, 단순히 여성의 신체노출로 인한 시각적 즐거움, 목표물을 탈취하는 오락적 쾌감을 원한 관객들을 완벽히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다수의 관객들의 기대와 반응은 이럴 것이다.

관람 전

“스트리퍼어어?! 돈을 훔쳐어어?!?! 막 벗어 제껴어어어?!?!?!?!”

 

 

 

관람 후

<허슬러>는 의도적으로 관객이 예상할 수 있는 오락적 쾌감을 배제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스트리퍼의 관념적 이미지를 보여줄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스트리퍼를 업으로 삼는 여성들의 상황과 심정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관능적인 몸매를 비추면서 춤을 추고, 남성 관객들을 유혹하려는듯한 스트리퍼는 이 영화에서 아주 잠시 비춰질 뿐이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스트리퍼들의 무대보다는 그들의 대기실에 관심이 많은 영화다. 그들이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는지, 그들의 성적 매력을 자본으로 구매하려는 남성들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러면서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여성들을 관찰한다. 자극적인 소재를 오락적으로 부풀리는 것보다는, 이를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느껴진다.

 

2. 경제위기, 빈부격차, 그리고 자매애

<허슬러>는 스트리퍼로부터 성적 쾌락을 구매하려는 남성들을 향한 서커 펀치(불의의 일격) 같은 영화이지만, 그보다 훨씬 심각한 주제를 다룬다. 영화의 시작점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지기 1년 전이라는건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 주인공인 데스티니(콘스탄스 우)는 우연히 베테랑 스트리퍼 라모나(제니퍼 로페즈)를 만나고 의기투합하여 자신이 속한 스트립클럽 ‘무브스’에서 돈을 쓸어담는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남성 고객들을 싸그리 휘어잡으며 그들과 맞먹는 수익을 벌어들인다. 돈을 탐닉하는게 당연시됐던 월스트리트의 늑대들을 털어먹겠다는 귀엽고도 멋드러진 한탕이다. 물론 그들의 호시절은 1년 후 세계를 강타해버린 경제공황에 의해 씻겨내려간다. 마치 라모나가 데스티니에게 ‘우리는 X나 허리케인 같았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스트립클럽은 예전같지 않다. 손님의 발길이 예전보다 줄어들었고, 유사성행위를 유도하는 남성 고객들 때문에 스트리퍼들의 삶은 예전 같지 않다. 스트립클럽이 제공하는 여성들의 스트립 , 소위 시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었던 시대는 사라졌다. 이제 시늉만으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 오롯이 욕망을 실행시켜주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중산층은 몰락했으니 손님의 발길은 끊어졌고, 여전히 부를 쥐고 있는 상류층은 돈으로 무엇이든 다 살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대공황 이후 헤어졌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월스트리트 고위 간부들을 털어먹을 계획을 세운다. 이쯤 되면 영화는 단순히 호구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들의 범죄로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여성들의 범죄는 사실상 비명에 가까우니까. 괜찮은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성, 순식간에 미혼모로 전락한 여성들이 생존 전략이 범죄라니. 이 얼마나 처연한 상황인가.

 

 

3. 조금 더 아기자기한, 조금 더 페미닌한, 조금 더 귀여운 <좋은 친구들>

<허슬러>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갱스터영화인 <좋은 친구들>과 닮아있다. 자세히 말하자면 영화의 중후반 전개는 <좋은 친구들>과 동일하다시피하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지만 동료들간의 우정과 배신과 의리를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마치 고전 명작을 통째로 오마주하려는듯 하다.

<허슬러>는 오마주의 대상보다 훨씬 아기자기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범죄는 총과 주먹이 앞서가는 물리적 폭력을 구사하는게 아니라, 여성의 성적 매력으로 남성들을 유혹해 돈을 갈취한다. 이들은 신체적-물리적 압박을 통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다는 남성들의 도덕적 윤리와 욕망 사이에 안전지대를 만들어 그들을 데려가 지갑을 훔친다. 20세기 갱스터 장르에서 뒤가 없이 무조건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의 범죄보다는 훨씬 아기자기하면서 영민하다. 새로운 범죄방식을 연구하기 위해 재료를 만들다가 기절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귀여운 유머다.

 

4. 결국 이 세상 자체가 스트립클럽과 다를바 없다

<허슬러>가 세상에서 소외받는 여성들의 고난을 단순히 오락적인 쾌감으로 낭비했다면, 이 글이 이렇게 길어졌을 리가 없다. ‘억눌린 세상의 소외받은 여성들이여, 들고 일어나라! 남성들 뿌셔! 성차별 뿌셔!’ 로 한줄요약하고 말았을 테니까.

그러나 <허슬러>는 다양한 시선을 갖고 있는 영화다. 범죄의 주체가 사회로부터 곱지 않는 시선을 받는 여성 스트리퍼라는 점, 그리고 그들 또한 스트립클럽을 방문하는 남성들처럼 특정한 욕망에 이끌려 뒤가 없는 것처럼 범죄를 확장시킨다는 점, 그리고 주인공 데스티니와 그들의 범죄를 추적했던 기자와의 대화를 통해 범죄의 시발점이 빈부격차와 교육환경 등의 문제라고 지적한다는 점에서 창작자의 세심한 시선이 엿보인다. 마치 스트리퍼들의 삶을 오락으로만 소비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소외받은 자들 또한 부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며 돈을 갈취한다. <허슬러>는 소외받은 여성들의 범죄를 정당화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 세상은 그들이 일했던 스트립클럽고 다를바 없는 욕망이 꿈틀거리는 곳이며, 그러한 욕망이 경제불황과 빈부격차라는 현상에 섞여 그들을 어둠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하는 감독의 질문 같은 작품이다.

주의. 여기서부터는 과대해석.

 

스트립클럽은 관음의 욕망을 해소하는 장소다. 그리고 남성의 성적 욕망을 실현하는게 아니라 그 허상만을 바라보아야만 한다는 점에서 법에 저촉되지 않는 욕망 해소다. 그렇다면 영화는? 영화야말로 허구의 세상이 펼쳐진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관음의 욕망 해소가 아니던가. 관객은 영화 속 사람들을 관찰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들의 법과 윤리를 위배하는 행동을 보고 비웃으며 키득거린다. 좌석에 앉은 자신들 또한 또 하나의 스트립클럽에 앉아서 현실에선 감히 해내지 못할 욕망을 상상하고 해소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르는 척 하고 있거나.

0. 본격 결혼-마약 근절캠페인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