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얄미운 걸작! [나이브스 아웃] 리뷰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려고 개고생한 글입니다.)

1.한줄요약 : 각본, 10점… 10점이요.

<나이브스 아웃>은 라이언 존슨 감독의 천재성이 반짝이는 작품이다. <브릭> 과 <루퍼>로 이미 자신이 천재적인 영화광임을 입증한 라이언 존슨은 글로벌 팬무비인 스타워즈 시리즈의 8번째 작품을 맡았다. 그리고 그는 한 인간이 통틀어 받을 수 있는 욕을 한순간에 먹었더랬다. 클리셰를 절묘하게 피하는 그의 플롯 트위스트가 스타워즈에서는 역효과만 난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었다.

한 사람이 평생 먹을 욕을 한순간에 몽땅 듣게 만든 문제의 그 영화…

(낡아버린 스타워즈 프렌차이즈의 생명연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설정과 플롯 트위스트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라이언 존슨은 스타워즈 팬들이 사랑했던 스페이스 오페라의 요소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덧, 이건 라이언 존슨을 변호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라이언 존슨은 <나이브스 아웃>으로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고전 추리소설의 외형을 가진 이 작품은 완벽하게 계산된 플롯 트위스트를 통해 이야기를 예측하기 힘든 영역으로 나아간다. 오직 극작술만으로 서스펜스와 흥미를 유발시킨다는건 보통 능력이 아니고서는 힘들다. 그리고 라이언 존슨은 그걸 해낸다.

 

2. 전형적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나이브스 아웃>은 고전 추리소설의 전통적인 서사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처럼 보인다. 억만장자 소설가의 집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그리고 집 안에 있던 가족들 중 하나가 용의자라니.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와 반 다인의 추리소설 같다. (평론가들은 반 다인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대중적으로 아가사 크리스티가 더 유명하고 친근하다. ‘오리에트 특급살인’이 떠오르기도 하고.)

간단하게 말하면 고전추리물의 형식미를 갖춘 작품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외형에 불과하다. 영화 속 배경인 집이 고전적 건축양식을 가졌지만 그 안은 다양한 문화 유물이 장식되어 있고, 집에 사는 사람들은 기성세대-신세대-이민자들인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거주하는 집은 예전부터 지어진 고전이지만, 그 안의 거주자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구도가 마치 집이라는 공간을 미국처럼 보이게 한다. 영화는 전통추리물처럼 사건에 사립탐정이 등장하고 사람들을 하나 하나 수사하면서 마지막에 이르러 탐정이 추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범인을 지목한다. 코난이나 김전일처럼.

사건 발생 – 경찰 and 탐정 등장 – 용의자탐색 – 또다른 사건 발생 – 탐정의 추리 – 범인 색출. 추리물의 대부분은 이런 구조를 지닌다. <나이브스 아웃>도 이런 구조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언 존슨은 추리물의 클리셰를 답습하는 듯 하면서도 교묘하게 클리셰를 비켜간다.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들겠다고 작정한듯 싶다. 바로 이렇게.

사건발생 – 탐정 등장 – 용의자탐색 – 또다른 사건발생 – 좁혀지는 용의선상 – 또다른 증거나 증인 발견 – 탐정 추리 – 범인 색출

사건발생 – 탐정 등장 – 용의자탐색 – 범인 공개…?? – …???? – 예상치도 못한 뜬금포 전개 – 또 다른 사건발생 – 의외의 인물 등장 – 탐정 추리 – 범인색출 

<나이브스 아웃>은 고전 추리물의 형식을 지키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영화는 플롯트위스트로 빚어낸 복잡한 서사와 인물관계로 예측을 힘들게 만든다. 다수의 관객들이 ‘범인이 누구일까?’로 집중할 때 라이언 존슨은 ‘범인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까’ 혹은 ‘진짜 범인이 걔가 맞을까?’ 하며 새로운 의문을 던져 관객의 정신을 흔들어댄다. 이건 단순히 이야기를 복잡하게 꼬아만 놓고 관객을 현혹시키려는 흔한 반전영화의 테크닉이 아니다. 얼기설기 대충 이야기를 꼬은게 아니라, 대사와 소품, 상징들 하나 하나 신경쓰고 복선으로 활용하는 꼼꼼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탐정 묘사다. 대부분의 추리물에 등장하는 탐정은 디테일한 특징은 다르겠지만 대개 공명정대한 관찰자이며 일종의 신비감이 부여되어 있다. 영화 속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은 추리물의 클리셰처럼 관객의 시선을 확 끌며 등장하고, 어둠 속에서 사건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만 알아들을 수 있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약간의 허당끼도 보여준다. 사건을 도넛으로 빗대며 중얼거리는 씬은 그가 마초 캐릭터의 끝판왕인 제임스 본드 역을 소화한 배우였다는걸 믿을 수 없게 만든다.

그 외에도 영화는 장르의 전형성을 의도적으로 비껴나가는데,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 🙂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뿜어낸 탐정은 영화 후반부에 개그도 담당한다. 여러모로 만능캐.

4. 다분히 정치적인, 다분히 미국적인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의 성취를 나열하자면 지면을 활자로 잔뜩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브스 아웃>이 스크린 앞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의 현실, 정확히는 현 미국 세태를 찬찬히 들여다 본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사회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영화의 배경인 집에 사는 인물들은 기성세대 – 현세대 – 이민자로 구성되었고, 더 나아가서 나치우익으로 놀림 받는 보수우파 – 페미니즘을 배우며 현재에 불평만 늘어놓는 진보좌파로 나뉜다.

영화 속 가족들은 사망한 집주인이자 저명한 추리소설작가인 할아버지의 자식들이다. 구성원들은 사업가, 출판사 대표, 인플루언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집주인인 아버지처럼 오롯이 자수성가를 이룩하진 못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명예와 재력을 통해 성공해낸 자식들은 모여서 국경을 넘어오는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좌우 대립이 심화될 즈음 그들은 아버지의 간병인이었던 이민자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의 명예와 재력을 통해 성공해낸 자식들은 모여서 국경을 넘어오는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좌우 대립이 심화될 즈음 그들은 아버지의 간병인이었던 이민자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를 불러놓고 그에게 의견을 묻는다.

이런 장면은 영화에서 발생하는 폭력 중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이는 현실의 미국인들이 불법체류자와 이민자들을 대하는 위선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현 미국의 위상, 그리고 미국 국적을 지닌 사람들에게 날리는 라이언 존슨의 비아냥인 셈이다. ‘니들이 한 거라곤 아버지 잘 만나서 태어난 거 뿐이야. 니들이 진정 자수성가했다고 생각해?’ 라고. 이민자들을 챙기며 그들을 가족처럼 대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친절의 반대편에는 계급서열을 명확하게 나누려는 위선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영화를 리뷰하기 어렵다. 앞서 소개한 장면 뿐 아니라 현 미국의 상황을 은유하는 장면과 대사, 소품들이 줄곧 등장하니 집중해서 다시 관람하시라.)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강렬한 대비. 영화는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묻는다.

시나리오로 기교를 능수능란하게 선보이면서, 영화로서 할 수 있는 현실개입까지 해낸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바라보는 감독의 태도까지 능청스럽게 실어내고야 말았다. 이 얼마나 얄미운 걸작인가. 올해의 각본상 후보에 올려도 손색이 없는 영민한 작품이다.

(아마도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된 리뷰는 유튜브로 따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추신. 추리물에 국한되지 않은 조언이지만, 관객은 대부분 영화를 보면서 범인과 결말을 예측하면서 감독과 승부를 하려 든다. <나이브스 아웃>은 그런 승부를 걸고 싸워도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그것보다는 추리의 과정, 그리고 전환점을 어떻게 기막히게 드리프트하는지를 관찰해야 하는 영화다.

라이언 존슨의 현란한 극작술에 취해도 좋고, 그걸 성실히 집행하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에 집중해도 좋다. 어서 빨리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인 이 작품을 만나러 영화관으로 달려가시라.